잠이 안 오는 밤이 오랜만이다.
아마 오늘 하루종일 혼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아무래도 에너지를 덜 쓰게 되어서
잠이 쏟아지지 않는가보다.

출근한 날이나 남친을 만난 날은 곧장 잠에 떨어진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일할 땐 모르던 피로가 그제야 찾아들고 남친을 만나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잠이 잘 왔는데 혼자 집에만 있으니 쌩쌩하다.

혼자 있는 시간동안 시를 좀 읽었다.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라는 시집이었다.
마음에 드는 시가 많이 있었다.
피아노랑 기타도 좀 쳤다.
혼자의 시간이 생기니까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금수저로 태어나 더 젊었을 때 이런 시간을 매일 보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바보같은 청춘을 보냈더랬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면서 매일 개고생하며 알바하고 빚지면서까지 의미모를 책들을 읽어댔다. 정말 의미모를 책들이었다. 끙끙대며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후회는 없다. 나는 그게 인생을 제일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인생의 바닥을 기어가며 맛없는 걸 뜯어먹는 게 가장 값진 거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참 오만하거나 고상했고 절실했다.

근데 다행인 건 십 년쯤 지나니까 그 의미들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완전 버러지같은 시간은 아니었다.

지금 또 달라진 것은 이제 돈의 중요성을 절절히 느낀다.
왜냐면 돈이 좀 생겼기 때문이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개무시했는데
돈이 있어보니 좋은 줄 알게 됐다.
많지는 않지만 한달한달 살아갈 걱정까지는 안 하니까.

그래도 이 이상 벌 생각은 없다.
나에게는 적당한 돈만큼이나 고상함과 절실함도 필요하다.

취직해서 출근하기 시작한 후로 12시가 넘은 새벽 시간에 깨어있었던 적이 없다. 직장인의 비애.
그게 습관이 됐는지 이제 12시가 넘으면 뭘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예전엔 이런 깊은 밤 시간을 사랑했는데, 그새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아침을 사랑하게 됐으니, 새로운 사랑을 향해 잠을 청해보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