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 첫사랑을 너무도 사랑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내가 찐따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도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지도 못하는 찐따.
내 존재가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찐따.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부끄러워서 못 입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내가 뭘..’ 하면서 체념하고
다른사람과 친구가 되지도 못하고
뭘 해야할지도 몰라서 매일 게임하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시간낭비나 했다.
대학교 때 분위기 있는 카페나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면접보러 가면 퇴짜 맞기 일쑤였다. 그런 데서 일하기에는 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게 어색했고 내가 하고 싶은 걸 말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자존심은 세서 찐따라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바쁜 척, 생각있는 척했다.
그 ‘척’들 탓에 찐따의 생활이 더 연장됐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억눌렀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날 아주 사랑해줬다.
나와 달리 아주 솔직하고 용기있는 사람이라서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점점 내면으로 찐따가 되어가던 나는 나를 너무 싫어하게 됐고 첫사랑도 견딜 수가 없어졌다. 나는 첫사랑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난 찐따였지만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 정말 괜찮은 남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찐따여서 사랑을 지키지 못했다.

내 연애의 목적은
내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것이었다.
그토록 이타적이었다, 나는.
그 이타성이 나를 찐따로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그렇게 너무 이타적이었던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사랑을 잃었다.

첫사랑은 나와 헤어질 때 세상 무너지듯 울었다.
난 울지 않았다.



우리는 연애를 왜 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여자거나 남자니까 한다. 우린 성(性 sex)을 갖고 태어났으니까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성에게 끌리든 동성에게 끌리든 어쨌든 끌릴 수밖에 없다. 아니, 이런 생물학적 끌림은 끌림이라기보다 꼴림이다.

근데 우리가 성적으로 꼴리기만 하는 거라면 번거로운 연애따위 필요없다. 원나잇이 있지 않은가. 소수의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 같은 그 짜릿한 원나잇 말이다. 꼴리는 남자나 여자와 하룻밤 자고 바이바이. 다음날은 또 다른 상대. 모두가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간단하고 행복할지. 비록 오늘 좀 덜 꼴렸고 그래서 덜 성욕이 해소됐더라도 내일이 있으니 걱정이 없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이 보편적이지는 않다. 보통 많은 사람들은 연애를 하려고 하지, 원나잇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원나잇을 하긴 해도 가끔이거나 연애와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원나잇만 하면서 살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다.

그러므로
연애의 목적은 일단 꼴리는 것에서 시작하되, ‘꼴리는 것 그 이상의 뭔가’를 누리려고 하는 데 있다. 남자친구 여자친구 애인 이런 관계를 만들어두면서 말이다. 근데 ‘꼴리는 것 그 이상의 뭔가’가 무엇인 걸까?
바로 거기에 우리들의 연애의 목적이 있다.

재밌는 건 ‘그 이상의 뭔가’라는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얽히고 섥힌다. 그 ‘꼴리는 것 이상의 그 뭔가’ 때문에 우리는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슬픔을 느끼기도 하면서 온갖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고, 이 세상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당신의 ‘뭔가’는 무엇인가?


잠이 안 오는 밤이 오랜만이다.
아마 오늘 하루종일 혼자 있어서 그런 것 같다.

혼자 있으면 아무래도 에너지를 덜 쓰게 되어서
잠이 쏟아지지 않는가보다.

출근한 날이나 남친을 만난 날은 곧장 잠에 떨어진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일할 땐 모르던 피로가 그제야 찾아들고 남친을 만나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잠이 잘 왔는데 혼자 집에만 있으니 쌩쌩하다.

혼자 있는 시간동안 시를 좀 읽었다.
심보선의 <오늘은 잘 모르겠어>라는 시집이었다.
마음에 드는 시가 많이 있었다.
피아노랑 기타도 좀 쳤다.
혼자의 시간이 생기니까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게 된다.
금수저로 태어나 더 젊었을 때 이런 시간을 매일 보낼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나는 바보같은 청춘을 보냈더랬다.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면서 매일 개고생하며 알바하고 빚지면서까지 의미모를 책들을 읽어댔다. 정말 의미모를 책들이었다. 끙끙대며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후회는 없다. 나는 그게 인생을 제일 제대로 사는 방법이라고 믿었으니까. 인생의 바닥을 기어가며 맛없는 걸 뜯어먹는 게 가장 값진 거라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참 오만하거나 고상했고 절실했다.

근데 다행인 건 십 년쯤 지나니까 그 의미들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완전 버러지같은 시간은 아니었다.

지금 또 달라진 것은 이제 돈의 중요성을 절절히 느낀다.
왜냐면 돈이 좀 생겼기 때문이다.
돈이 없을 때는 돈을 개무시했는데
돈이 있어보니 좋은 줄 알게 됐다.
많지는 않지만 한달한달 살아갈 걱정까지는 안 하니까.

그래도 이 이상 벌 생각은 없다.
나에게는 적당한 돈만큼이나 고상함과 절실함도 필요하다.

취직해서 출근하기 시작한 후로 12시가 넘은 새벽 시간에 깨어있었던 적이 없다. 직장인의 비애.
그게 습관이 됐는지 이제 12시가 넘으면 뭘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예전엔 이런 깊은 밤 시간을 사랑했는데, 그새 사랑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대신 아침을 사랑하게 됐으니, 새로운 사랑을 향해 잠을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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